바람에 날린 삶
바람이 벗 삼아 비와 같이 거닐면
며칠 전 곱게 핀
담벼락의 능소화는
어젯밤 무슨 일에
옹기종기 내려앉아
씻겨진 흙바닥에 제자릴 지킨다
구름이 떨쳐낸 이 비가 걷히면
언제나 그들은
모퉁이 자리차지
주인의 빗자루에
한구석에 밀리지만
아직은 제자리인 듯 앉아 숨을 쉰다
햇빛과 동무되어 열흘을 못 견디고
장맛비와 함께 온
바람의 부채질에
흔들리는 잎들만을
고이 남겨두고는
그 아래 말없이 발길 곁에 멈춘다
두 눈 부릅뜨고 애처로이 바라보며
멈칫 발걸음을
크게 한번 옮기고는
행여나 밟을까 봐
세월을 뛰어넘고
장맛비 소리에 미소 짓고 떠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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